기회의 영어 단어. 원어민이나, 영어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등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영어로는 "챈스"[tʃæns]로 발음한다. 이걸 일본어표기로 챤스(チャンス)가 된 것을 한글로 중역해서 생긴 표기가 바로 "찬스". 따라서 퍼질대로 퍼진 오역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영국식의 IPA는 [tʃɑ:ns]라서 "찬스"가 완전히 틀린 표기는 아니다.
주로 퀴즈프로그램에 자주 쓰는 단어로, 이 단어를 이용한 드립이 있었는데, 동거동락에서 박경림이 '찬수'로 잘못발음하자, 유재석이 '찬수'는 네 친구라며 응수했다. 그 후 강현수가 찬스에 실패하자 차태현이 박경림에게 찬스판을 찬수에게 주라고 말했고, 이범수가 '쟤가 찬수냐?'라며 드립했다.
심지어 강현수는 실제로 찬수라는 친구가 있다는 말을 했다.
스포츠에서도 득점 기회를 찬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야구에선 득점권에 주자가 나갔을 때 찬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허구연 KBO 총재가 해설위원 시절에 이 단어를 ‘챈스’라고 많이 불렀었다.
학산문화사에서 발행된 격주간 만화잡지로 1995년에 주간지로 창간하였고, 1997년 중반에 격주간으로 바뀐다. 2009년 4월을 기점으로 격주간에서 월간으로 변경되었다. 정식 명칭은 코믹 매거진 찬스.
창간할 당시에는 '소년 매거진 찬스'라는 이름이었고, 소년 매거진이라는 이름 답게, 출판사에서 매거진 계열(코단샤 계열)만화를 자주 수입해왔고, 본지에 연재한 일본 만화는 전부 소년 매거진 만화였다. 이외에도 Max Lai라는 필명을 쓰는 대만 작가의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소화상이란 대만 만화를 연재한적이 있었다.
같은 소년 만화 잡지인 아이큐 점프, 소년 챔프에 비해 상당히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3대 소년만화 잡지에 위치에 있다. 다만 소년만화 잡지가 사실상 위에 세개밖에 안남음에 따라 의미는 없게 되었다.
후발로 출발했기에, 1990년대 당시 네임드 작가들을 포섭하지 못하여 신인 작가들을 위주로 기용해 왔고, 지금도 세 잡지중 가장 신인 기용에 힘쓰고 있는 잡지이다.
그나마 소년지 중 가장 작가의 포진이 젊고 신선하며,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월간으로 바뀌면서 일본 만화를 그대로 계속 연재하는게 힘들어져서[1] 2012년부터는 연재중인 일본 만화를 전부 빼고[2] 100% 한국 만화로만 연재되었다.
2012년 7월호(이 항목 맨 위의 사진)를 마지막으로 폐간. 2012년 8월호부터는 부킹과 통합되어 찬스 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재창간되었다.
만화를 전문적으로 연재하는 잡지. 일본 소년지에 실리던 만화가 점점 인기를 끌다가, 이후 대부분의 지면이 만화로 뒤덮이게 되면서 탄생하였다.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과 대만에까지 도입되었다.[1] 잡지 연재를 하여 인지도를 얻고, 연재분량을 묶어서 판매하는 잡지-단행본 체계의 중심이며 일본에 한정한다면 2017년 현재까지도 출판만화의 핵심 소스이고, 한국 역시 그 영향을 받아서 198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출판만화의 핵심 소스였다. 그러나 2010년대를 기준으로, 한국 만화의 기둥은 완전하게 웹툰으로 넘어갔고 그나마 남아있는 한국 출판만화 역시도, 웹툰 출신의 만화들이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으며 과거 주력 출판만화 작가들도 은퇴하지 않았다면 다수 웹툰계로 넘어간 상태다. 일반적인 잡지와 마찬가지로 단순 판매량으로는 수익을 잘 내지 못하며, 어디까지나 단행본 판매를 위한 광고매체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영미권 쪽에서는 그래픽 노블 특유의 특징인 풀컬러와 작화의 디테일으로 제작 시간이 다른 나라의 만화들보다 두배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다. 들게 내놓는다고 해도 가격이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DC 코믹스에서 무려 월간지도 아닌 주간지로 내놓은 적이 있으나. 많은 내용의 만화를 실어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작화 질이 많이 떨어지고[2] 스토리의 질도 떨어지고 제작비에 비해 가격도 너무 낮고 잘 팔리지 않게 되어서 중단되었다. 미국 만화 역사상 5대 삽질을 꼽으라면 꼭 뽑히는 이야기중 하나이다. 유럽권 나라에서는 만화 잡지의 개념이 없고 신문이나 일반 잡지에 연재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2. 한국의 만화잡지
한국의 경우 1948년 <만화행진>이 창간된 것을 시작으로 만화잡지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3], 1950년대 중후반에 단행본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만화잡지들이 연이어 창간되는 전성기를 맞기도 했으나 지나친 경쟁[4]과 이에 따른 질적저하, 열악한 경제환경, 만화방의 확산 등이 맞물리면서 1960년대 들어 만화 시장의 주도권을 만화방에게 넘겨주고 만화잡지는 전부 폐간되어 완전히 자멸하고 말았다.[5][6]
그러다가 1982년에 월간 보물섬이 창간되어 만화잡지가 부활하였고 80년대 중후반부터 만화잡지 창간붐이 일기 시작하여 르네상스, 아이큐 점프, 소년 챔프등 일본 만화잡지 시스템의 영향을 받은 만화잡지들이 속속 창간되면서 그 이전까지 만화 시장의 주도권을 쥐던 만화방 만화를 제치고 만화 시장의 주도권을 쥐었다. 1990년대는 말 그대로 한국 만화잡지의 전성기로,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조금 과장하자면 일본이 부럽지 않을 만큼의 대박을 기록했다. 1990년대 초, 아이큐 점프가 30만부, 소년 챔프는 14만부 정도(#)를 찍어냈고, 한창 잘나갈 때는 원탑이었던 아이큐 점프가 60만부까지 팔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참고로 만화잡지문화의 원조인 일본도 2017년 현재 60만부면 세 손가락에 꼽히는 수준이다. 이 분위기가 1996년가지 이어졌다.
그러나, 1997년 청소년보호법 파동을 시작으로 외환위기와 ADSL의 보급으로 인한 스캔본 확산까지 겹치면서 만화잡지는 급속히 세를 잃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2000년대 초까지는 그래도 열혈강호와 짱 등 킬러콘텐츠가 있었던데다가 힙합, 까꿍, 오디션처럼 대히트를 치는 만화가 나오는 등 아주 막장까지는 치달은건 아니었지만 이후로는 콘텐츠의 무료화와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따른 일본만화 수입의 증가[7][8], 익숙해진 만화독자층이 만화잡지에서 떠나간데다가 추가적인 킬러콘텐츠마저도 빈약해지고 그나마 연재되는 만화의 상당수가 일본만화의 아류작인 경우가 많았다는 문제도 겹쳐지고[9][10] 2002~2003년을 전후하여 만화 시장의 주도권을 학습만화와 웹툰에 넘겨주게 되었다. 덧붙여 이 시기를 전후해서 만화작가들의 상당수가 학습만화 업계나 게임원화가로 전직하는 경우가 늘어났으며 일본으로 떠나는 경우도 존재했다. 만화잡지들이 지속적으로 폐간되는데다가 단행본 수익은 일본만화와 불법유통되는 스캔만화에 밀려서 기껏해서 책 내봐야 벌볼일 없는 수준까지 떨어진데다가 원고료는 동결되어서 먹고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만화가들의 절규라는 글이 나오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만화를 미리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2003~2006년을 기점으로 해서 네이버, 다음, 엠파스, 야후!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속속 자체 웹툰 서비스를 런칭하고, 이러한 자체 웹툰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주요작가 진까지 끌고온 뒤로는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사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는 만화계 내에서 웹툰이 무료콘텐츠라 시장성이 염려되고, 신인 작가 위주로 시작해 그림체도 뛰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아